경제일반

공부 잘하는 기억법(3/5)

화난고양이 2013. 1. 13. 14:22

<출처:매일경제>

`정교한 망`으로 기억돼야 오래간다

◆ 공부 잘하는 기억법 / (3) 기억에 대한 잘못된 상식 ◆

학교 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암기하는 일이다. 시험 직전 산더미 같이 쌓인 암기할 내용을 앞에 두고 힘들어한 적이 한두 번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번 들었던 내용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 수도 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작년 9월 14일 저녁에 누구를 만났는지를 기억해 보라.

불가능할 것 같지만 기억해 낼 수 있다. 9월 14일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고 월요일이었다.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추석이 끝나고 학교 혹은 직장에 가야 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면 많은 경우에 그날 저녁에 누구를 만났는지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마음 속에 기억된 내용들이 쉽게 없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망각이 기억된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처음에 기억하지 못한 추석 마지막 날에 누구를 만났는지를 나중에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억이론에서는 기억 과정을 부호화, 저장, 인출의 세 단계로 나눈다.

부호화는 우리가 경험하는 내용을 머릿속에서 저장할 수 있는 부호로 변형하는 과정이고, 저장은 이 부호를 머릿속에 담아두는 과정이며, 인출은 저장된 정보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어느 한 과정에서라도 실패하면 망각이 일어나게 된다.

망각은 기억된 내용이 사라지는 저장의 실패로 흔히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출의 실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예에서는 처음에 인출을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하게 된다.

기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인출을 용이하게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부호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내용을 기억할 때 그 내용만 분리해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수업시간에 신라시대 역사에 대해 듣고 있었다면 그 역사의 내용과 더불어 주변에서 딸깍거리는 볼펜 소리, 교실을 밝게 비추는 햇살, 그 당시 자신의 기분, 선생님의 목소리 등 항목들이 동시에 부호화되고 이것들이 연결돼 기억된다.

기억의 특성상 하나의 항목이 우리 기억 속에서 활성화되면 다른 것도 덩달아서 활성화된다.

예컨대 A-B-C-D가 연결(연합)돼 저장돼 있다면 A가 바로 인출되지 않더라도 연결된 B, C, D의 일부가 활성화되면 A가 활성화돼 인출할 수 있다.

위의 예에서 수업시간 상황을 인출해낼 수 있으면 신라 역사에 대해 더 잘 인출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위의 추석 마지막 날의 기억에서 발생한 것이다.

기억된 항목들이 연합된 구조는 인출에서 아주 중요하다. 연합은 의미적으로 유사한 것들끼리 더 잘 형성되고 정교한 망(network)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기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암기보다는 정교한 망(semantic network)을 형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정교한 망에서는 항목들이 하나씩 기억되는 것이 아니고 의미적으로 유사한 주변 사실들과 함께 체계화돼 기억되는 것이다.

`프랑스 수도가 파리`라는 것을 단순히 머릿속에서 열심히 외우는 것보다는 프랑스와 관련된 여러 사실이나 수도와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동시에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금까지 기억의 실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머릿속에 저장하는 데 실패하기보다는 인출의 실패에 기인하는 일이 많으며, 인출을 돕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를 머릿속에서 받아들여 부호화할 때 의미적으로 잘 조직화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그럼 기억력이 우리의 지적 능력과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기억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통해 기억력의 중요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지심리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 가운데 S라는 사람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옛 소련 기자였는데 편집장이 주는 과제를 매번 노트에 기록하지 않았다. 편집장은 화가 나서 이를 꾸짖었는데 알고 보니 편집장의 모든 이야기를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 인지심리학자에게 보내져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는 50개 숫자로 구성된 행렬을 180초에 기억할 수 있었으며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기억력을 보였다.

얼마나 이 사람이 부러운가.

그러나 이 사람의 최종적인 직업은 공연기억술사로 자신의 기억력이 좋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탁월한 기억을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이 공연기억술사였다. 기억을 잘하는 사람이 항상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사진과 같이 기억되는 내용만으로는 우리의 지적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사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체계(의미망) 속으로 의미 있게 포함돼야지 유용한 지식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 추가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청택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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