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답답한 환율정책…증시 외국인 '꽃놀이패' 전락

화난고양이 2013. 1. 15. 10:50

[머니투데이 임상연, 오정은기자][[고삐풀린 환율](4) 외국인 '핫머니' 주의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외국인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에서 18조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은 앉은 자리에서 환차익을 거두며 축배를 들고 있다.

반면 국내 증시는 '핫머니'가 잠재적 매물로 누적되며 '엑소더스'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율 하락을 틈타 유입된 투기성 자금은 환율이 반등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서다. 이 경우 국내 증시는 또 다시 '글로벌 현금인출기(ATM)'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환율이 실물 경제와 함께 자본시장을 흔드는 최대 변수로 떠올랐지만 이를 실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환율 정책이 없어 위기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외국인 자금 '밑물'…바이코리아 이유는

= 14일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은 주식 17조6300억원, 채권 7조3960억원(순투자(순매수-만기상환) 기준) 등 총 25조260억원 어치 국내 증권을 순매수했다. 2011년 2조4670억원을 순매도한 것과 상반된 매매패턴이다.

외국인의 바이코리아 행진은 올 들어 계속되고 있다. 연초 이후 8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국내 주식과 채권을 각각 4660억원, 266억원 가량 사들였다.

외국인 자금이 밑물처럼 유입되는 것은 미국 재정절벽 협상 타결 등 글로벌 리스크 완화와 상대적으로 건실한 한국경제의 펀더멘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파르게 하락하는 원/달러 환율도 주요 원인으로 뽑힌다.

국내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환율 하락은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무위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꽃놀이패'다. 주가상승 또는 금리하락에 따른 매매차익과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서다.

예컨대 지난달 18일 외국인이 사실상 제로금리인 달러를 빌려 국고채 3년물에 100억원을 투자했다면 한 달도 채 안 돼 국고채 매매차익(11일 매도 기준, 0.39%)과 환차익(1.85%)까지 합쳐 총 2억2400만원(2.24%) 가량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른바 '달러 캐리트레이드'를 통한 무위험 차익거래(재정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환율 등락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들쭉날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환율 하락기에 무려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였지만 3월부터 환율이 반등하자 '팔자'로 돌아서 4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또 6월을 정점으로 환율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8,9월 두 달간 9조6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수하는 등 환율 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였다.

한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자금흐름이 환율로 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환율 하락기에는 투기성 자금의 유입폭이 늘면서 방향성이 결정되기도 한다"며 "최근 유입된 외국인 자금 중 상당수는 캐리트레이드 전략을 활용하는 '핫머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원화 가치가 7.6% 절상되는 동안 국내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 중 56%(9조9211억원)는 헤지펀드 등 핫머니가 몰려있는 유럽계 자금이었다.

◇환율에 춤추는 유럽계 핫머니 '조마조마'

= 전문가들은 시장상황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유럽계 자금은 환율이 반등할 경우 매물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수세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계 자금은 환율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최근 들어온 외국인 자금은 한국 기업들의 실적보다는 금리, 환율 등 다른 매력을 보고 들어온 자금이 많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해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 규모만 5조원에 달한다. 프로그램 매매 특성상 이들은 조만간 청산해야 자금이므로 한 번에 유출될 경우 지난 2008년 당시처럼 증시에 쇼크를 줄 가능성도 있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자금은 단기 회전성 자금으로 매도 조건이 형성될 경우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미 원화절상으로 충분한 이익을 얻은 일부 외국인은 자금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환율이 언제 바닥을 찍느냐는 신호다. 아직은 추가하락 전망이 우세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재발, 기업 펀더멘털의 급격한 악화 등 대내외 변수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추세는 바뀔 수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환율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당국이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보다 실효적인 환율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에서 환율을 관리하기 어렵고, 결국 국내 자본시장이 외국인의 '꽃놀이패'가 되는 현상만 반복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최근 외환시장을 보면 정부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올랐다가도 다시 그 이상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밀려드는 달러를 정부당국이 인위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정부에서 외환 포지션 축소 등 다양한 개입을 시도했지만 환율 방어가 잘 되지 않았다"며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원화절상 속도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를 당국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