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Weekly Biz] 오바마의 치명적 실수

화난고양이 2012. 12. 4. 01:43

볼프강 문차우 Wolfgang Munchau FT 칼럼니스트

 

 

오바마 정부로선 끔찍한 출발이었다. 의회가 경기 부양 대책에 구멍을 냈고 금융 구제안은 사실 안(案)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에게 갈수록 자명해지고 있는 사실, 즉 미국 금융 부문이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라는 사실을 미국 정부만 집요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금융 부문에 대한 유럽 정부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계속된 부인(否認)은 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가져올 것이다. 은행시스템 개혁은 때를 놓칠 것이고, 세계 경제는 상당 기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운이 나쁘면 글로벌 경기 침체(recession)가 글로벌 불황(depression)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번 위기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정책 당국자들이 너무나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세계 무역은 작년 10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11월과 12월엔 자유 낙하했다. 1월과 2월엔 다소 안정됐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1월 무역 통계로 판단하건대 이 또한 너무 희망적인 기대일지 모르겠다. 산업 생산과 주문도 거의 모든 대규모 산업 국가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리더들은 국제 공조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 금융 부문의 현 상태를 살펴 보자. 필요한 부실 자산 상각(빌려준 돈이 떼일 것으로 보고 손실 처리하는 것) 규모가 2조2000억~3조6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중 절반 가량, 즉 1조1000억~1조8000억달러 정도가 미국 안에 있다. 그런데 미국 은행시스템 전체의 자본 규모는 1조400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금융 부문이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낙관적으로 추정하더라도 남는 돈은 3000억달러에 불과해 은행들은 1조달러 정도의 신규 자본이 필요하다. 이 돈은 물론 정부 외엔 올 곳이 없다. 따라서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국유화는 불가피하다.

물론 내일이 오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자산 가치가 기적적으로 회복된다면 미국 금융 부문은 기술적 파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하고 있는 게임이 바로 이것이다. 더 좋은 날을 기다리는 것 말이다. 민간 투자자들이 이성을 되찾아 증권을 사고 팔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산가격 회복이 도대체 어디서 올 것인가? 서브프라임 위기의 단초가 된 연체율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아마도 주택가격은 올해도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담보로 한 증권시장은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연체율이 오르고 있는 신용카드, 그리고 기업 대출이나 지방정부 채권 같은 다른 자산들도 마찬가지다.

부시 행정부는 부실 자산들을 할인된 가격에 사주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즉 세금으로 민간 부문을 구제하려 했다. 당시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과소 평가한 측면이 있지만 만일 그렇게 했다면 수조달러가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7000억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으로는 결코 문제를 풀지 못했을 것이다.

새 구제 금융안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다만 부실 자산을 사들이는 데 민간 부문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2조달러라는 신문기사 제목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새로 추가되는 돈은 없다. 부시의 옛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그대로이고 그 중 3500억달러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돈 가지고는 부족하니 민간 부문을 끌어들여 2조달러의 레버리지를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독성(毒性) 자산(toxic asset)을 제거할 수 있을지 분명하지 않다. 독성 자산이 남아 있는 한 은행들은 계속 대출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은행을 건전화하는 데 납세자나 채권 보유자 혹은 주주들이 얼마나 비용을 부담해야 할지를 놓고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1차적으로 미국의 문제이다. 하지만 구제 금융이든 국유화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 경제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국유화만은 피하려 한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이번 위기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그리고 미 정부는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구제 금융을 지원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본적으로 작년 10월에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 셈이다. 누구도 이번 구제 금융안이 미국 금융 부문을 원 상태로 되돌려 대출을 재개하도록 만들 것으로 믿지 않는다.

만일 부시 정부가 리먼 브러더스의 붕괴 뒤에 미국 은행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국유화를 시작했다면, 혹은 정부 소유의 배드뱅크(bad bank)를 만들어 부실 자산을 사들였다면 우리는 지금쯤 최악의 위기에서는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를 다시 연장하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진실을 인정하기까지 다시 6개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경기 침체는 훨씬 악화돼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자의 이라크와의 전쟁에 버금가는 정책 실수를 이미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와 그의 조국이 쉽사리 회복하기 힘든 실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