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누가 이충성에게 돌을 던지나

사회일반 2013. 1. 13. 20:48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내 국적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다녀왔고 남들 다 그러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같은 국적의 여성을 만나 결혼해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살 것이다. 아마 대부분 우리나라 남자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내 국적과 조국을 의심해 볼 일이 없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국적과 조국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나를 부를 때마다 짜증만 낼 뿐 심각하게 국적과 조국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 칼럼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국적과 조국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의 심정을 100% 이해할 수는 없다. 바로 이충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충성(20번)은 한국의 붉은 유니폼이 아닌 일본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JFA

일본 대표 리 타다나리, 아니 이충성

어제(9일)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일본과 요르단의 경기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충성이 일본 대표로 경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리 타다나리라는 일본명의 이충성은 이날 경기에 교체 투입돼 공격 선봉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우리는 과연 리 타다나리, 아니 이충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그를 배신자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오늘 칼럼에서는 그를 리 타다나리가 아니라 그의 진짜 이름 이충성으로 표기하려 한다.

이충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보도됐다. 일본 도쿄 태생의 재일교포 4세인 그는 조총련계 조선 초급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고 보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일본중학교로 진학, 고교 졸업 후 FC도쿄 18세 유스 팀에 입단해 1군까지 올랐다. 2004년에는 19세 이하 한국 청소년 대표팀에까지 발탁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해 일본 대표로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에 나섰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충성은 일본 성인 대표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이번 아시안컵에 나서고 있다. 일본에는 가위 바위 보부터 대변 길이까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정서를 감안한다면 한국인이 일본 축구 대표로 뛴다는 건 엄청난 충격이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이번 아시안컵 4강에 나란히 진출한다면 이충성은 한국 골문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일본의 첫 경기가 끝난 현재에도 벌써 이충성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충성은 J리그에서도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2010 시즌에는 11골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 선봉장으로 우뚝 섰다. ⓒJFA

한·일 양쪽에서의 비난

하지만 나는 이충성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그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축구 선수의 인생을 산다고 해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에게 관심 한 번 기울인 적 없으면서 그가 ‘원수’이자 ‘정서상 최대의 적’인 일본 대표가 됐다고 해 이제 와서 그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 그를 배신자라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충성은 일본에서도 많은 욕을 먹는다. 이충성은 라모스나 알렉스처럼 브라질 출신이면서 일본으로 귀화해 대표 선수가 된 선수들의 ‘립서비스’와는 다르게 줄곧 솔직한 심정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일본 대표가 돼 영광”이라는 ‘립서비스’는 하질 않는다.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큰 무대에서 골을 넣어 재일 한국인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 나와 같은 재일 한국인에게 큰 힘이 되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 그는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는 재일교포 4세지만 피는 속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일본팬들은 이충성을 좋게 바라볼 리 없다. 안 그래도 달갑게 바라보지 않는 한국인이 자국의 대표 선수가 된 것도 못마땅한 판국에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일본 대표가 된 걸 자랑스럽게 여기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충성은 늘 ‘재일 한국인’임을 강조해 왔다. 일본 우익 단체에서는 “피가 다른 한국 국적이었던 녀석이 일본대표로 시합에 뛰는 걸 믿을 수 없다. 재일 조선인은 반일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팬들 역시 그를 욕한다. 앞뒤 다 떠나서 한국인이 일본 국적을 선택하는 건 용납할 수 없나보다. 더군다나 한일 감정이 가장 심한 스포츠인 축구라는 종목에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일본 대표 선수가 됐으니 그 서운한 감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는 오히려 ‘자이니치’를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정서가 만들어 낸 피해자이기도 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이충성의 모습. ⓒJFA

그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말, ‘반쪽바리’

2004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입성한 이충성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일본에서의 멸시도 꿋꿋이 참아왔던 그는 조국인 한국에 오면 그간의 상처에 대해 팀 동료들이 다독여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건 오산이었다. 연습경기에서 동료들이 패스를 해주지 않는 건 예사였고 심지어는 팀 동료로부터 ‘반쪽바리’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 주변에도 재일교포 친구가 있다. 그는 ‘쪽바리’라는 욕의 의미를 잘 안다. ‘쪽바리’가 일본인을 비하하는 우리식 욕설이라는 건 재일교포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재일교포 누구도 자신이 ‘쪽바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인 자신과 ‘쪽바리’라 불리는 일본인은 다른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하는 욕설을 같은 한국인에게 들었다는 사실은 재일교포로서는 엄청난 충격이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 욕먹고 한국에서는 ‘반쪽바리’라 욕먹으니 이충성은 그동안 철석 같이 믿어왔던 정체성에 엄청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넌 네 아빠 닮아서 그 모양”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넌 네 엄마 닮아서 그 모양”이라고 할 때 느끼는 소외감의 수천 배에 달하는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인이라고 차별받다 그걸 견디고 한국에 왔더니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조국에서 겪었던 배신감을 과연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기회주의자였다면 아예 처음부터 국적을 숨겼을 것이다. ⓒJFA

이충성이 기회주의자가 아닌 이유

사실 냉정히 말해 이충성이 당시 청소년 대표팀에 남아 있었다고 해도 주전 자리를 꿰찰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에는 박주영을 비롯해 이근호, 신영록 등 쟁쟁한 공격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충성이 낄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의 축구 실력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국 대표팀에서 낙마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일장기를 가슴에 단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일본에는 조선인이라는 차별대우가 싫어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이들도 많다. 스포츠는 물론 정·제계에도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충성은 한 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그가 정체성을 숨기고 축구에만 전념했다면 이런 비난을 들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당당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그가 나는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만약 그가 차별대우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성을 버리고 정체성을 숨기며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면 그게 더 기회주의자 아닐까.

이충성은 주위의 개명 권유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도 ‘이충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충성’이라는 이름은 그가 당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과 다름없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항상 ‘자이니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그는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해도 자랑스러운 이름 세 글자를 지켰다. 아직도 그의 소속팀 산프레체 히로시마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면서 ‘리 타다나리’가 아닌 ‘이충성’을 외친다.


그는 비록 국적을 바꿨지만 한국 성을 그대로 쓴다. ‘LEE’가 일본 대표팀 최전방에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 새롭다. ⓒJFA

누가 이충성을 매국노라 할 수 있나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하역 작업을 하다 화재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마 이충성의 일본 국적 취득을 비난하는 이들의 반일감정 이상으로 이충성이 일본을 대하는 감정이 더했으면 더했지 호의적일 리 없다. 이 사실을 아는 이충성이라 일본 국적 취득이 더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충성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던 날 경상북도에 있는 선산에 가 다짐했다. “조상님의 마음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자부심을 절대 잊지 않겠다.”

일본 대표 리 타다나리를 만든 건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고 우리가 자이니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과연 이충성 한 명에게 비난의 화살을 모두 돌릴 수 있을까. 나는 이충성이 이번 아시안컵에서 멋진 활약을 펼쳐 재일 교포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그가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이국 땅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고통 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이름이 되길 바란다.

그를 감싸 안기는커녕 모욕감만 잔뜩 줬던 우리 사회가 반대로 그를 비난하는 건 웃긴 일이다. 누가 그를 배신자라 욕할 수 있는가. 남의 아픔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은 이제 멈추자. 이충성은 ‘반쪽바리’가 아니다. 그는 비록 일본 대표 선수가 됐지만 여전히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나는 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니폼에 새겨진 한국 이름 ‘충성’이 참 자랑스럽다. 그의 일본 대표팀 유니폼에 새겨진 한국 성 ‘LEE’가 참 자랑스럽다.

footballaven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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