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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9.08 댕견,동경이
  3. 2012.09.05 삽살개, 이건 아니다 1
  4. 2012.08.22 명품시계?!
  5. 2012.08.22 의병?!
  6. 2012.08.22 조선?!
  7. 2012.08.22 사랑 받을 만 한 존재.
  8. 2012.08.22 김홍도 - 씨름 2

흥(興)

우리문화 2013. 12. 19. 23:41



임요환과 홍진호의 대결, 스타크래프트1의 마지막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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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견,동경이

우리문화 2012. 9. 8. 12:55

<출처:http://www.dog-zzang.co.kr>

 

 

역사적 유래
현재 국내에서는 진돗개와 풍산개?삽삽개 정도만 토종 견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 댕견을 토종 견으로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러나 댕견이 우리 고유의 토종 견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잘 뒷받침된다.
조선 순종 때 간행된【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券之十二象緯考 十二) 12권의 고려 때 조항에 “이상한 개(狗異)“가 적혀 있는데 "동경(경주의 옛 지명)“의 지형은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는 형상인 까닭에 그곳에서 태어난 개는 꼬리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地志云, 東京地形, 有頭無尾, 犬之生於此地者, 多無尾, 故俗諺因以無尾犬, 謂之東京犬.) 그리하여 속언으로 꼬리가 없는 개를 ”동경개(東京犬)라고 한다"고 돼 있다.
 
동국어록(東國語錄)】에도 '동경구(東京狗)'라고 돼 있다. 경주를 동경(東京)이라고 부르던 고려시대 경주에 이 개가 특히 많아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문헌에 기술된 사실 외에도 동경이가 우리 고유의 토종견 임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민화 속에 그려진 토종 견들의 모습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견공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귀가 처지고 얼굴이 두루뭉실하다. 또 꼬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모습의 견공도 자주 등장해 동경이가 토종 견으로 광범위하게 사육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경이는 지역 사투리에 따라 그 이름도 달리한다. 경상도에서는【댕갱이】전라도에서는【동개】 강원도와 경기도에서는【동동개】라고 불린다.
 
70년대 근대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똥개나 토종개들보다 외국산 견공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왔다. 뒤늦게 우리 것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이는 와중에 토종개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존재가치를 알린 댕견. 그러나 동경이는 개체수가 워낙 적어 극소수의 애견동호인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뭉툭한 얼굴에 축 처진 귀, 있는 듯 없는 듯 구색만 갖춘 꼬리. 국내 토종견 임에도 불구의 개로 인식, 한때 멸종위기를 맞았던 댕견의 첫인상이다.
 
동경이 특징
동경이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개와 달리 천골(척추의 하단부에 있는 이등변 삼각형의 뼈)이 없어 꼬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꼬리뼈 마디가 2개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다.
꼬리가 없는 대신 다리와 목?가슴?후각이 특히 발달해 있고 몸이 유연하고 민첩하다. 수렵능력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냥 견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안에서는 낯선 사람을 봐도 잘 짖지 않고 사람 말을 잘 들어 일부 지역에서는 '바보개' 취급을 받곤 한다.
동경이는 용맹하고 충실하며 부드러운 천성을 견지하고 주인에게 호의적이며 주인의 친절에 민감하다.
짐승에게는 사나우나 사람에게는 온순하다. 특수한 훈련을 시키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면 다른 개에게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또한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사람과 접촉하기를 좋아하며 ,주인의 극단적 장난에 결코 반항하지 않고 복종한다.
두 가지 성격을 띄며 수렵에 우수한 개체로 다른 개들과 만남 시 싸우려는 태도를 취하긴 하나 명령 하에 즉시 멈춘다.
훈련에 우수한 개체로 다른 개들에게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며 먼저 시비를 걸지 않으며 자기보다 약한 개나 강아지를 물어 버리는 경우가 없다.
 
동경이 체형

* 골격
전체적인 외모와 움직임, 그리고 구성은 균형 잡혀 있으며 풍부하고 강인한 골질을 소유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골격과 밸런스는 유지되어 있고, 둥글고 길게 붙어있는 뼈와 근육은 충실하여 지나치게 육중하거나 경박함도 배제되어 체중과 체고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 사이즈
크기는 수컷이 기갑까지 56㎝ 전후(3㎝)정도이고, 암컷은 50㎝ 전후(3㎝)이다.

* 털
털은 이중 보호모로서 거칠고 짧으며 두툼하고 치밀한 속털로 되어 있다. 더러는 겉털이 낚시 바늘 처럼 구부러진 것이 있으며 이러한 종류는 성격이 강하다.

* 모색
모색은 황색, 흐린 황색, 재색, 백색, 또는 네눈박이( 블랙&탄 ) 도 있다.

* 행동
느리게 어슬렁거리다가도 리드미컬하고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마치 노루나 사슴이 뛰는 것같 이 보인다.

* 성격
지적, 온화, 성실, 순응, 쾌활하고 행동이 풍부하며 집중력을 지닌 수렵성과 훈련소질 또한 우수하 다.

* 다리
뒷다리, 허벅지는 잘 발달되었고, 내외고 향하지 않으며 지상과의 각도는 45。이다.
비절(발뒤꿈치)은 잘 발달되어 예리한 윤곽을 만들어 엉덩이에 30% 정도를 유지한다.
앞다리는 강하고 견고하여 똑바르나 발을 정확하게 밟기 위하여 스프링과 같은 유연성이 있다.
가슴깊이 때문에 다리는 적당히 길어야 하며, 지상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가 기갑전체의 약 55%이 며 아주 짧은 다리는 개가 움직이는데 좋지 않다.
어깨는 길고 45。로 경사져 견고하게 붙어 있고 사지는 굵고 길며 발통은 고양이 발처럼 힘있게 주 먹 쥐어 있다. 발톱은 힘있게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발바닥은 두꺼우며 탄력이 있다.

* 머리
머리는 역삼각형으로 약간 길어 보이고, 이마와 머리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두 귀의 안쪽 뿌리부 터 스토브 중심점은 정삼각형을 이룬다. 주둥이는 보통으로 길며 뾰족하지는 않으나 코를 향하여 앞쪽으로 좁다.

* 귀
귀의 크기는 귀의 안쪽 이근부부터 눈의 바깥쪽 눈 꼬리까지 똑같은 크기이며 직립형과 반 직립형 이 있는데 직립형보다 반 직립형이 성격이 과묵하고 강하다.

* 눈
눈의 간격은 적당하며 아몬드형으로 눈꼬리는 귀뿌리까지 근접하는 상상점(포인트 이미지나리)을 향하고 있으며 안색은 살기 있는 호랑이 눈 안색이다.

* 코
대체로 검은색을 띠며 코끝이 들리어 굵고 힘찬 숨을 몰아 쉴 수 있어 냄새에 대한 구별과 지속적인 호흡조 절을 할 수 있도록 길게 머리와 연결, 발달되어 있다. 때로는 날씨나 기후 조건에 따라 코끝이 홍조 빛을 띠 기도 하며 기능적 발휘에는 상관없다.

* 얼굴
평시 표정의 상태로 과묵하며 목적이 없을 때를 제외하 곤 진지하지 않고 기쁠 때 표현은 귀를 뒤로 넘기고 입 가에 웃음이 적어 빠르게 읽지도 못하나 5~6개월이 지 난 댕견들의 특이한 몸 동작이 기쁨에 대한 표현을 대 신하기도 한다.

* 목
목은 강인한 근육으로 보통 45。 각도로 들고 어깨에 연결되어 있으며 주위를 살펴 볼 때는 위엄을 갖고 더 높이 머리를 들고 있다. 목은 보기 좋게 아치형으로 되어 어깨와 연결을 이룬다.
* 가슴
가슴은 깊고 척추에서부터 길게 휘어져 나왔으며, 어깨의 적당한 움직임과 앞다리 바로 위쪽으로 힘있게 넓게 퍼져 있다.

* 배
가슴은 깊고 척추에서부터 길게 휘어져 나왔으며, 어깨의 적당한 움직임과 앞다리 바로 위쪽으로 힘있게 넓게 퍼져 있다.

* 꼬리
미추골 두 마디 정도가 있다(더러 3~4마디가 있는 경우도 있다) 꼬리의 표현력이 조금 감지된다.

* 치아
이는 정상교합이며 견치가 상당히 크다.

* 등
기존의 동양견에 비해 조금 쳐져 보이는데 쳐져 있기 때문에 유연성과 민첩성이 더 하는 것 같다. 수렵활동을 할 때 180°회전이 가능하다.

동경이 수렵성
동경이는 사냥터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댕견은 집단을 이루면 자동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사냥에 투입되는 순간 서열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멧돼지를 사냥할 때는 대장견이 멧돼지의 목을 문 다음에야 서열이 낮은 개들이 멧돼지의 뒷다리를 문다고 한다. 또한 주인이 물러서라고 명령하면 바로 물러설 줄도 안다.
 
동경이 용맹성
천성적으로 타고난 수렵견으로서 큰 멧돼지를 만나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집요한 공격을 한다.
멧돼지를 공격시 혼자서도 공격하는 대담성이 돋보인다.
산 속에서의 훈련 시 사람들을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짖지를 않고 도주하는 일이 없다.
동경이의 보존
현재 국내에서는 진돗개와 풍산개, 삽삽개 정도만 토종견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 동경이를 토종견으로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러나 댕견이 우리 고유의 토종견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잘 뒷받침된다.
역사적 문헌에 기술된 사실 외에도 댕견이 우리 고유의 토종견 임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민화 속에 그려진 토종견들의 모습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견공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귀가 처지고 얼굴이 두루뭉실하다. 또 꼬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모습의 견공도 자주 등장해 동경이가 토종 견으로 광범위하게 사육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근대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똥개나 토종개들보다 외국산 견공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왔다.
뒤늦게 우리 것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이는 와중에 토종개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존재가치를 알린 동경이. 그러나 동경이는 개체수가 워낙 적어 극소수의 애견동호인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동경이에 관한 다큐를 TV에서 봤다.
주인집을 잘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앉아서 돌부처처럼 꼼짝 않고 밤새 지키고 있는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성격은 온순하며 조용하다.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짖질 않는다.
꼭 키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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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살개, 이건 아니다

우리문화 2012. 9. 5. 23:39

 

<출처:야후블로그>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삽살개..
그 삽살개의 진위 논쟁이 있었다. 하지홍이라는 한 유전공학자가 자기가 우리 토종견 삽살개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는데 일반국민들은 '아니다..' 하는 논쟁이다. 삽살개를 복원했다면 잘했다고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건만 왜 논쟁이 있었을까?

누가 삽살개를 복원했다고 하자. 보기에 아주 멋지다면 ‘이거 우리 삽살개 맞다’ 며 그냥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홍이라는 자가 탄생시킨 삽살개는 그렇지 않았다. 우스꽝스런 털북숭이를 개를 두고 삽살개라고 했다. 국민들이 기대하던 그런 모습의 삽살개가 아니었다. 귀신을 쫓을만큼 용맹하고 무서운 개였다는 삽살개.. 처음에 삽살개라고 공개한 사진을 보고는 나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할거면 차라리 하질 말지 띠바.

한눈에 보아도 외래견들끼리의 잡종교배로 나타난 것이 분명한 품종을 두고 ‘삽살개 복원’이니, ‘천연기념물 지정’이니, ‘독도 지킴이’니 요란을 떠는 바람에 사람들 눈에 고깝게 찍혔다. 때마침 황우석과의 경쟁과 갈등도 한 몫 했을 터이고.

국민들이 기대하던 삽살개는 이런 모습이었다.

 

 

(대다수 학자들이 우리 삽살개의 원형이라고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Tibetan Mastiff 다.)

 

그러나 하지홍이 만들어 놓고 삽살개라고 우기는 개는 이 모습이다.

 

 

(어떤가.. 이 개를 보고 과연 귀신들이 놀라 도망갔을까? 내 생각엔 웃었을거 같은데..)

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홍의 이 개가 어떤 개를 닮았는지 바로 안다. 

 

 

(Old English Sheepdog이다. 하지홍이 만든 개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크기를 줄이고 색깔만 바꿨다.)

아무리 하지홍의 개를 삽살개라고 생각해 주려해도 이건 결코 아니다. 한번 정해지면 그걸로 끝인데 그럴 수는 없다. 차라리 이 우스꽝스런 하지홍의 개보다 오히려 이에 자극을 받아 다른 지역에서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오수개’가 차라리 낫다. 이 오수개는 우리가 옛날 얘기속에서 잘 알고 있는 개다. 불에 타 죽을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서 물에 뛰어들어 자기 몸에 물을 적셔서 주인에게 와선 물을 뿌려주고..이러다가 장렬히 산화했다는 그 충직한 개다. 그냥 이야기속에 전해지는 오수마을의 한마리 개다. 품종은 애당초 아니다. 그런데도 이 지역에서 이 개의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다행히 이들은 솔직하게 까놓고 시작했다. 새로운 품종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근데 이 하지홍이라는 자는 자기 아버지가 삽살개 혈통을 지키고 있었고, 자기가 노력해서 품종을 완성해 삽살개를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버지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삽살개가 맞단다. 내가 이 사기꾼의 삽살개의 ‘복원’을 ‘창조’라고 폄하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삽살개라는 '품종'이 우리나라에 존재한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품종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불과 백년 미만이다. 그 전까지는 아무집 개가 아무집 개와 자유롭게 결혼을 하여 새끼를 낳았다. 품종이 관리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따라서 신라시대때 ‘삽사리’라고 불렀던 개의 기록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개의 품종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털이 긴 개를 부르던 일반명사였다. 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삽사리가 한가지 품종이 아니라는 걸. 

 

 

이건 하지홍 지지자들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삽사리란 長毛種 개를 부르는 일반명사였음을. 그러나 하지홍만은 자기가 유전공학자임을 내세워 삽살개가 실제로 품종으로 존재했던 개이며 자기가 그것을 복원했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전혀 없이 그냥 그렇게 떼를 쓴다. 있지도 않았던 개를, 또 설사 있었다 할지라도 문헌기록상 1900년 이전에 멸종되었다는 삽살개를 100년 가까이 지나 지 멋대로 혈통을 만들어선 그걸 복원했다고 떼를 쓰고 있다.

이게 돈 때문임은 누구나 안다.

좋다. 삽살개라는 품종이 있었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삽살개라고 공식적으로 표시되어 있는 옛날 신문의 사진을 보면 하지홍의 삽살개가 얼마나 어이 없는 별종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사진속의 삽살개와 하지홍의 개가 같은 삽살개로 보이는가?)

 

품종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건 삽살개뿐만이 아니다. 진돗개도 마찬가지다. 그런 품종이 옛날부터 내려왔던 게 아니라 어느 때(일제), 어느 지역(진도)에 모여 있던 비슷한 모양의 개들을 모아 품종정리를 하고 이름을 붙인 후 우리나라의 고유품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에 불과하다.

이건 지구상 모든 개들이 마찬가지이다. 어느 때에 한 지역의 비슷한 개들을 모아 품종관리를 하면서 이름 붙여진 것이 품종(breed)이라는 개념의 시작이다.

인간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들끼리’의 결혼풍습이 없어지고 이종류 저종류 간에 난혼을 일삼으면서 시작된 불행이다. 개가 인간과 함께 살기 전엔 그들의 조상인 늑대들처럼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이었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 일정한 형태의 개들이 무리지어 살며 각기 별도의 종으로 구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함께 살게 되면서 난혼이 시작되어 고유의 모습을 잃고 잡종의 모습들로 몇만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때 품종분류가 시작되면서 가르기를 했던 것뿐이다. 따라서 지구상에 순종혈통을 가진 개의 품종이란 애당초 없다. 즉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개중 몇천년간 순혈통을 이어오는 개는 단 한종도 없다.


현재 공식적으로 분류된 개의 품종 400여가지 중에서 원조는 40여종이라고 한다. 어느 시기부터다른 종과의 교배를 인위적으로 금하고 혈통을 지킨 것들이다. 근본은 잡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지역에 모여있는 비슷한 모습의 개를 따로 분리해서 지킨 품종의 조상들이다.

40여종이 조상이라면 나머지 360가지의 품종들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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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늘의유머>

 

 

 제 시계는 6원짜리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까 제 것과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일이 없으니까요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에 백범 김구 선생의 시계와

자신의 시계를 바꾸면서 한 말.

이 시계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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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랙홀 방송국>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다.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 6 17 () 오전 7 30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 저는 지난 6 10일 오후 5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이 둘을 1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 1970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 700,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 700, 1,000년을 갔습니다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 700, 1,000년 갔을 것입니다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자입니다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 5,000만자입니다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세종12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세종12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 8,657, 반대 7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 8,000, 반대가 7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 20,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100,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1,447년 세종 29년 음력 8 1일 오후 4 50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 55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 5시간 48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 5시간 48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담헌서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구체의 체적이 6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 42 51,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 30분에 있다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 12번 울리고 종료(鍾鬧) 125번 울렸다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삼국사기를 보면 682,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라고 불렀다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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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 씨름

우리문화 2012. 8. 22. 15:19

 출처 : 수현이의 빛깔은..... | khs8000
 원문 : http://blog.naver.com/khs8000/20006893742

 

 


 

Q 이 그림의 제목은 뭘까?


길잡이>>아이에게 제목을 먼저 물어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흥미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제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림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이가 대답한 제목이<씨름>과 연관될수록 좋은 대답이 됩니다.(참고로 씨름 이라는 제목도 그림을 그린 화가, 김홍도가 붙인 것이 아니라 후대에 붙여진 것입니다.)


Q 씨름을 본적이 있니? 씨름이 어떤 운동인지 알고 있는대로 설명해 볼래?


길잡이>> 이 질문은 아이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씨름을 떠올리게 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토론의 내용을 자기화 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경험한 세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며,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동기 유발이 되기 때문이지요.

씨름을 직접 관람해 본 아이들은 별로 없을 것 같군요. 씨름에 대해 알고 있다면 주로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장면을 접해 보았을겁니다.

그렇다면 씨름이라는 운동이 다른 운동과 비교해 보았을때,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 볼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예를들면, 어느 장소에서 경기를 하는지, 몇 명이 경기를 하는지, 운동복은 무엇을 입는지,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등입니다)


Q 이 그림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될까? 부채는 몇 개나 되는지 개수를 세어볼까? 정확하게 찾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디 한번 재어보자.


길잡이>>이 질문 또한 그림을 더욱 재미있게 보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림을 대충보지 않고 꼼꼼하게 볼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 그림속에는 22명의 사람과 4개의 부채가 있습니다.(이중에서 구경을 하는 구경꾼의 숫자는 19명입니다)


Q 씨름하는 장면이 펼쳐진 이 그림을 그린 계절은 언제일까? 그림속에는 계절을 알려주고 심지어는 이날이 무슨 날인지도 가르쳐 주는 증거까지 담겨 있단다, 그것이 무엇일까?


길잡이>> 대개 아이들은 그림속에 부채가 그려진 것을 보고 여름이라고 추론합니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요.

하지만 정확한 대답은 될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씨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풍경때문이지요. 조선시대의 씨름판은 음력5월5일인 단오날에 펼쳐지는 행사입니다.

특히 이날은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군요.

음력5월5일은 초여름이 시작되는 때라서 무더위가 찾아오는 시기가 아닌데, 왜 부채를 선물했을까요? 나라 경제가 농업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에는 양반 계급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어요.

초여름은 농사를 시작하는때이기도 했기 때문에 젋은이들이 힘들고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흘리는 비지땀을 부채로 식히라는 바램이 담긴 것이지요. 속 깊은 어르신들의 애정 표시였던 것입니다.


Q그런데 왜 여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통 남자들뿐인걸까요?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단오날에 여자들은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요?


길잡이>> 단오날이 되면 남자들은 장터에 모여서 한바탕 씨름판을 벌렸답니다.

하지만 남존여지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씨름이 구경한다는 것은 큰일날 일이었지요.

여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가까운 산을 찾아 시냇가에서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그네를 타면서 놀았다고 해요(신윤복의 단오풍경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면 더욱 좋습니다.)



 
 
 

 

 

Q 이 그림에서 양반과 평민이 한데 어울려 있는데 도대체 누가 양반이고 누가 평민일까? 양반과 평민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한눈에 양반과 평민을 구별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길잡이>>갓과 신말로 구별할수 있습니다.

양반과 평민은 쓰고 있는갓의 모양이 다릅니다.

왼쪽에 있는 반들의 갓은 챙이 넓고 크지만 위가 오른쪽위에 땅바닥에 놓여있는 뽀족한 것은 말뚝벙거지로 평민인 마부가 쓰던 모자이죠.

또한 신발의 모양을 보면 하나는 평민들이 신던 짚신이고 다른 것은 양반들의 가죽신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그림속의 씨름하는 두사람중 한명은 한명은 양반이고 한명은 평민인 것을 알수 있겠지요.

이 질문은 통해서 아이들은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양반, 평민, 천민이 구분되어 있던 <계급사회>였음을 알게 됩니다.

딱딱하고 어럽게 생각하기 쉬운 역사적 지식을 그림을 통해서 재미있게 배울수 있는것이죠.


Q 그림의 오른쪽 위에 있는 다섯 사람들중에서 씨름을 가장 오랫동안 구경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니?


길잡이>> 비스듬히 누워서 손을 머리에 괴고 있는 마부가 가장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구경꾼임을 추론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텔레비전을 오래보게 되면 비스듬히 눕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죠.

또한 이 다섯 사람중에서 가장 신나게 씨름을 구경하고 있는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도 할수 있습니다.

마부 옆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가장 신나 보이지 않나요? 만화영화에 푹 빠져 입을 헤벌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닯았습니다.


Q그림의 왼쪽 위에 모여 앉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은 누구일가?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뒷줄에 갓쓴 할아버지입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수염빛깔은 다른 수염들에 비해 희끗희끗할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것과 달리 할아버지의 눈꼬리는 아래로 축 쳐져 있기 때문이죠(아이들이 대답을 할때 그냥 ‘할아버지 같아서’가 아니라 생김새에 대해 꼼꼼히 관찰을 해서 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가장 자리에서 발을 잡고 있는 아이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라는 표시로 상투를 틀지 않은 댕기머리를 하고 있으며, 발을 잡은채 씨름에 빠져 있는 모습이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Q 이 무리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씨름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출전할 후보 선수가 두명 끼어 있는데 누구일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무릎에 손까지를 끼고 있는 사람과 그 뒤에 앉은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을 보세요.

한결같이 신나는 표정과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표정과 자세는 그렇지가 않아요. 꼭 다문 입모양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꼿꼿한 자세는 지종일관 긴장된 모습으로 씨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 이 두사람은 씨름을 보면서 어떤기술을 써서 상대를 이길까? 하며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Q열심히  씨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볼까? 이 두사람 중에 한사람은 평민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양반인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수 있을까?


길잡이>> 이 두사람이 씨름을 하기 위해서 옆에 벗어 놓은 신발을 보세요.

하나는 양반이 신느 가죽신, 다른 하나는 평민이 신는 짚신입니다.


Q 씨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중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왜 그렇게 생각하니?


길잡이>> 두 다리가 땅에  굳건히 세워져 있는 씨름꾼이 이제라도 곧 씨름을 끝낼 요량인지 팔에 힘을 주고 상대방 몸을 번쩍 안아 올릴 작정인 것 같아요. 축 처진 상대방의 오른팔과 달리 이기고 있는 씨름꾼의 오른팔에 힘줄이 선명하게 보이지요? 반대로 한쪽 다리가 들린 상대방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네요.


Q 힘센 씨름꾼이 이제라도 곧 상대방을 힘껏 내동댕이 칠 것 같지 않니? 지고 있는 시름꾼의 몸이 곧 쓰러질 것 같구나. 그렇다면 이 씨름꾼의 몸은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 것 같니?

그림을 꼼꼼히 관찰해 보세요.

화가 김홍도는 지금 이 씨름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씨름에 진 사람이 쓰러질 방향까지 친절하게 가르져 주고 있답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세요.

팔을 뒤로 젖힌채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습니다. 씨름판에서 지고 있는 씨름꾼이 돋 자기네 쪽으로 쓰러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죠. 아이쿠! 얼른 피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Q 재미있는 씨름판이 이제 곧 끝날 것 같구나. 그런데 그림속에는 씨름판에 왔는데도 씨름에는 전혀 신경도 안쓰는 사람이 하나 있네, 누구일까? 그사람은 무엇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니?


길잡이>> 엿장수입니다. 상투가 아니라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인 것 같아요.

씨름판을 돌아다니며 엿을 파는 엿장수에게는 씨름꾼보다 구경꾼들이 더 중요하죠.

씨름꾼들이 등지고 선 엿장의 표정을 보세요.

산을보듯 먼곳에 시선을 박고 있는 엿장수의 표정에는 씨익 미소가 번져 있군요.기분좋은 표정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일까요? 엿판에 놓인 엽전 세 개가 흡족해서일까요? 집에 계시는 늙으신 어머니께 생선 한 마리를 사 드릴돈이 되는걸까요? 아니면 좋아하는 옆집 순이한테 잘 보일 거울이라도 하나 사려는것일까요? 아이와 함께 재미난 상상을 해 보세요.

엄마가 미리 엿을 준비해서 아이와 함께 먹으면서 대화를 하면 참 좋겠지요?


Q그림속에서 소리는 들리는 것 같지 않니? 어떤소리들이 들릴까?


길잡이>>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림속 사람들의 얼굴이 마치 우리동네 사람들처럼 친숙해졌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림을 천천히 보면서 귀를 활짝 열어볼까요? 씨름판의 소리는 마치 운동회를 할때처럼 여러 사람들의 외침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씨름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소리, 엿장수의 목소리,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나는소리, 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의 기합소리 등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현장에 있는것처럼 흥겹게 소리쳐 아나운서처럼 흉내내도록 유도해 보세요.(굉장히 재미있게 하더라구요)


Q 김홍도의 씨름그림에속에는 수수께끼가 하나 숨어 있는데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채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으로 남아있단다. 그림오른쪽 아래에 있는 두 사람중 왼쪽에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잘못그려진 부분이 있는데 한번 찾아볼래? 화가가 그림을 잘못 그리다니 신기하지? 그런데 그속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숨어있단다.


길잡이>> 입을 벌리고 놀라고 있는 왼쪽 사람의 오른손 모양을 보세요.

오른손이 왼손처럼 잘못 그려져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화가가 실수로 잘못그린 것일까요?

아마 씨름에서만 잘못 그려졌다면 김홍도의 실수라고 여겼을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홍도의 여러 작품속에서 이처럼 손이 잘못 그려진점을 발견할수 있답니다.

모든 그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손이 잘못 그려진 점을 발견할 수가 있죠.

이 사실을 두고 여러 미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론은 잘못그린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담긴 화가 자신만의 표시라는 의견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와 함게 추론해 보면 어떨까요? (참고로 저희집 아이는 김홍도가 후세에 자신의 그림을 그린 모조품을 가려내라고 그렸지 않을까 이렇게 추론하더군요)

특히 이질문은 아이들이 이 그림을 신비롭게 여기게 하는 가장 재미있는 질문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그림이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특별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겠죠.


Q 위에 그림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한 인쇄본인데 원본을 한번 보고 싶지 않니? 실제로 이 그림의 원본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리고 이 그림의 원래 크기는 얼마나 될까?


길잡이>>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작품들은 서울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관람 여부를 미리 확인해서 아이와 함게 직접 감상할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원본을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본을 복사한 인쇄본들은 인쇄상태에 따라서 색깔과 크기가 클려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본 그림만이 줄수 있는 감동이 있기 마련이죠.

<씨름>의 원본 크기는 27*22.7cm 으로 공책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개 아이들은 아주 큰 그림일 거라고 상상하다가 원본 크기를 알고 나면
깜짝놀라죠.

이때 화가 김홍도가 왜 그토록 훌륭한 화가라고 칭송받는지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이 작은 종이위에 그것도 연필이 아니라 털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22명의 사람들의 표정과 나이를 짐작할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표현력을 가진 화가는 그리 흔치 않겠죠. 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화가 김홍도는 아이에게 매우 특별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위인전기를  읽고난 후의 느낌과는 또 다른 깊은 감동을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느낄수 있는것이죠.

화가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그리고 생각을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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