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를 보면서 가슴을 쳤습니다
사회일반 2013. 1. 13. 20:51<출처:오마이뉴스>
"죽어라. 이 놈~"
병들어 누워있는 하옥대감(김좌근)을 향해 대원군이 나직한 목소리로 독한 말을 내뱉는다.
지난 주 목요일(6.21) 저녁 방영된 KBS2 드라마 '명성황후'(제 14회)를 본 시청자들은 이 대목에서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병든 사람 앞에서 인정상 차마 입으로 발설하기는 어려운 말이 아니던가.
그러나 김좌근이 누군가? 정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거의 60년 이상을 세도(勢道)하며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실세 중의 실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외척 안동 김씨의 권세는 왕실을 능가했다. 왕족이라도 김씨 일문의 눈치를 보며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삼정이 문란해지고 정치의 기강은 허물어져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되고 도처에서 크고 작은 민란이 끝 없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이런 상황에서 고종 즉위 이후 개혁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대원군으로서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꺽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했을 터.
"너희가 한 일이 무엇이냐...."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서 김좌근에 대한 대원군의 서슬푸른 단죄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너희가 한 일이 무엇이냐. 육십년 간 세도를 누리면서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 나라가 망하든 백성이 굶어죽든 오직 안동 김씨의 배를 불리는 일에만 전념을 해 온 무리가 아니냐. 그러고도 아직 미련이 남아서 숨을 쉬고 있느냐."
김좌근이 병석에 누워 부들부들 떨다가 두 눈을 번쩍 뜬다. 대원군, 빙긋 웃으며 부들부들 떠는 김좌근에게 말한다.
"정신이 번쩍 드시오이까? 하옥대감. 달이 바뀌면 경복궁으로 이어를 합니다. 자금성에 비할 수는 없으나 그만하면 한 나라의 군주가 체통을 지키며 살 만한 대궐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 전에 하옥대감께서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김좌근이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며 두 손을 뻗어 대원군의 멱살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그 두 손을 덥썩 움켜쥐며 말을 이어간다.
"내, 아드님께서 보위에 오르신 후에 대궐의 곳간을 열어 보았소이다. 곳간마다 먼지만 수북히 쌓여 있더이다. 이러고도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신통하기 그지없더이다."
"생각같애선 안동 김씨든 풍양 조씨든 다 잡아들여 재산을 몰수하고 그 죄를 물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소이다. 허나 참았소이다. 그랬다간 수구하는 세력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소이까.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털어서 왕실을 뒤엎어버리고, 강화도에서 나무나 캐다 팔아먹는 이름 없는 왕족을 다시 찾아 나섰겠지요. 그래서 참았소이다. 내게 힘이 없고 왕실에 힘이 없고 나라에 힘이 없으니 무슨 힘으로 그걸 막겠소이까."
"경복궁이 섰소이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경복궁이외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그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 아니오이까. 나라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는데 무엇 하나 돌려주는 것이 없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소이까. 그러니 이제 그만 죽어 주셔야겠소이다, 하옥대감."
"이제 그만 죽어 주셔야겠소이다...."
무겁게 깔려 나오는 대원군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하였다. 수구세력을 당장 단죄하고 싶어도 왕실에 힘이 없고 또한 수구세력의 반발이 두려워 참았다는 대목에 이르러는 명치 끝이 절로 아려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구청산과 개혁이 힘들고 지난한 것은 마찬가지. 하여 참고 또 참은 연후에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경복궁 복원과 이어에 때맞춰 수구의 수괴라 할 수 있는 김좌근을 찾아가 "이제 그만 죽어 주셔야겠소이다"라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대원군의 야멸찬 심정이 시대를 격하여 그대로 내가슴에 똑같은 통증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나만의 느낌이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이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실망과 환멸을 느끼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거창하게 시작되었던 개혁의 메아리는 날이 갈수록 미약해져서 이젠 거의 들리지도 않고 이에 반비례하여 수구의 목소리는 날로 커져만 간다. DJ 경제개혁의 핵심이라는 재벌개혁은 이미 물 건너 갔고, 국보법 개폐 등 중요한 개혁조치들도 정파들의 이해다툼과 숫자놀음의 와중에서 실종된지 오래다.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을 장악한 수구세력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명명한 소위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란 그럴 듯한 이름으로 옷을 갈아 입고 대한민국의 주류입네, 정통입네 하며 터줏대감노릇을 하고 있고,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이들은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혀 소외된 이방인마냥 무기력하게 변두리를 배회하고 있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언론사 세무조사문제도 마찬가지. 법적으로 정해진 세무조사마저 '언론탄압' 내지는 '언론 길들이기'라며 극렬하게 반대하던 조선, 중앙, 동아, 이들 3대 메이저(?) 신문사들은 국세청 중간발표 결과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가 백일 하에 드러나 그 때문에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음에도 자숙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추징세액이 너무 과하다느니 혹은 정부의 의도가 수상쩍다느니 하며 온갖 의혹을 확산시켜 소모적이고 지루한 정쟁꺼리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파수하기 위한 저항의 몸부림이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최근 들어 김대중 정부의 개혁실패와 레임덕을 틈타 수구.보수세력이 그동안 움추렸던 모가지를 한껏 밖으로 내밀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꾸자꾸 살아나는 이들 음습한 무리들을 어찌 하면 좋을까? 보수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깔려오는 답답한 현실을 내다보며 나는 어느새 기도처럼 대원군의 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죽어라. 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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