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테러에 당한 미해병대

국제관계 2012. 8. 26. 20:48

이스라엘 육군은 레바논에서 아주 잔인한 짓을 했다. 베이루트를 포위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은 악명 높은 레바논의 첩보대장이 난민촌에 피신해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학살하겠다고 나서자 기꺼이 묵인했고 심지어 그들의 이동을 엄호해주기까지 했다. 레바논 첩보부대가 이끈 기독교 민병대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무장도 하지 않은 난민들을 8백 명이나 죽였다. 얼마 뒤 현장에 들어간 기자들은 남자와 여자들이 무수하게 살해되어 널린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고 전세계에 알렸다. 레이건은 그 일에 이스라엘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분개했다. 베긴과 전화로 대판 싸우고 난후 레이건은 철수시킨 지 20일 만에 미해병대를 다시 레바논으로 보냈고, 프랑스 공수부대와 합류시켜 평화유지를 계속하도록 명령했다. 이 잔인한 학살사건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규탄했고, 이탈리아 부두노동자들은 이스라엘 화물선에 대한 하역작업을 거부했다. 한 해가 지난 1983년 여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는 회교도 테러리스트들이 강력한 폭탄을 트럭에 장치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들은 즉각 베이루트의 이스라엘 시설마다 특별경계에 들어가도록 경고를 내렸다. 그러나 모사드는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의 미해병대 기지에는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할 정도로 애매한 경고를 보냈으며, 당연히 미해병들은 특별한 경계태세를 유지하지 않았다. 10월 어느 날 새벽,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 대형 트럭 한 대가 미군 제8해병대대 본부의 강철 정문을 뚫고 들어갔다. 회교도인 자살 공격대원은 위병초소를 깔아뭉갠 후 트럭을 1층 로비로 몰고 갔다. 트럭에 실린 폭탄은 엄청난 위력으로 폭발했고 해병대 건물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 자살 공격으로 기상시간 직전의 새벽 단잠에 빠져 있던 해병대원 241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미해병대 최악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모사드는 미군 기지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들에게 구체적인 경고를 보내지 않았을까. 모사드에 환멸을 느껴 떠난 한 전직 요원이 이 사건에 대해 10여 년 전 폭로한 것이 있다. 그가 쓴 《By Way of Deception》이란 책에서 그 '애매한 경고'는 모사드의 국장이 지시했다고 밝혀놓았다. 미국인들과 미해병대에는 슬픈 날이었다. 알루미늄 관에 담긴 숨진 해병들은 C-141 스타리프터 수송기에 실려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 많은 관들은 공항에서 의장병(The Honor Guard)들의 손에 들려 끝없이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있던 레이건은 눈주위가 젖어들고 있었고, 외신으로 비쳐지는 70을 넘긴 노대통령의 모습은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중동을 바로 보라



이스라엘 소녀의 장례식이 중동의 비극을 상징하던 시절이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비련(悲戀) 얘기가 아니다. 아랍 테러의 잔혹성을 강조, 이스라엘을 야만에 포위된 문명의 고도(孤島)로 부각시킨 상징 조작이었다. 그 언저리에서 숱하게 학살된 팔레스타인 젊은이는 숫자로만 헤아린 비정한 모순을 언론학자들은 편향ㆍ왜곡 보도의 한 전형으로 꼽는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저항운동은 이런 편파성을 많이 해소시켰다. 최근 위기때는 이스라엘군이 무고한 팔레스타인 소년을 사살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전해져, 돌팔매와 새총뿐인 팔레스타인 소년들을 무장 헬기까지 앞세운 이스라엘군이 얼마나 잔혹하게 살상하고 있는가를 세계는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성난 군중의 손에 이스라엘 군인 2명이 희생되자 편파성은 이내되살아났다.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만행'을 비난한 반면, 소년 25명등 팔레스타인 주민 100여명이 학살된 사실은 `폭력사태'란 손쉬운 규정에 묻혀버린다. 이게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이유다.

팔레스타인 사태는 분쟁이나 폭력사태가 아니다. 이민족의 불법점령과 인권유린에 맞선 맨주먹 저항을 압도적 폭력을 지닌 점령자갴? 짓밟는 집단학살이다.

그게 국제법 원칙과 유엔 결의안에 충실한, 서유럽 언론의 평가다. 옛 남아공이나 코소보 등에 비겨볼 때, 이걸 부정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위선이다.

팔레스타인은 52년째 민족이산을 겪고 있다. 서구 세력을 업은 유대인들이수천년전 연고를 내세워 이스라엘을 세운 때문이다. 수백만명이 내쫓긴 현대판 디아스포라속에, 고향에 남은 300만명도 67년 중동전이래 33년동안 이민족의 무력통치를 받고 있다. 유엔은 이미 오래전 이스라엘이 생존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하라고 못박았다. 93년 오슬로 평화협정도 이 `땅대신 평화'원칙을 확인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민중은 지금껏 땅도 평화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통행제한으로 성지참배는 커녕 생업조차 어렵고, 여름엔 물 공급도 제대로 받지못한다. 이스라엘은 사법권까지 행사, 옛 남아공식 인종분리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여름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평화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을 2,000곳이나 늘리면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인 동예루살렘 문제를 최대 장애로 부각시켜 협상을 결렬시켰다. 아라파트의 완고한 자세가 타결을 막은듯 하지만,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한채 현상과 특혜에 안주해 민중의 지지를 상실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 지역에 오랜 연고가 있는 영국등 서유럽 언론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분노와 좌절을 해소하지 않는한 평화늴? 없다고 경고한다. 그 깊은 `원한의 강'을 메우는 길은 고대이래 삶의 터전인 점령지를 되돌려주고, 일상의 생명선인 동예루살렘에 대한 법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서구는 과거 동예루살렘에는 성지 템플 마운트만 있는듯 묘사했으나, 이제 이슬람 성지하름 알 쉐이크를 자주 언급한다. 유대교 성지가 지하에 많고 이슬람 성지는 지상에 있는 것을 들어 주권을 지표 상하로 나누라는 제안까지 내놓는다.

팔레스타인과 중동평화 문제를 보는 국제 여론의 변화는 `선량한 중재자'가 아닌 미국은 손떼고, 유엔에 맡기라는 주장이 상징한다. 힘의 논리로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을 비호한 미국은 자국함정에 대한 공격을 마치 민간선박 테러처럼 몰고 가지만, 아랍권의 분노를 국제 여론이 직시하지 못하게 하려는 선전이란 분석이다.

이걸 반미ㆍ반이스라엘로 여기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이스라엘의 양식있는 언론도 나라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국제법과 유엔이 정한 원칙과 정의를 따라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현실정치의 향방이 진실과 정의를 바꿀 수는 없다.

 

<출처:디펜스코리아-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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